조선왕조(이씨왕조)의 지속가능한 경영
목차 1.‘명’나라에 대한 제후국의 위치와 ‘사대교린’ 2.음서제도 3.조선 왕조의 왕위 계승 원칙 4.조선왕조의 기록문화 5.토속신앙 6.중앙집권체제 본문 3.조선 왕조의 왕위 계승 원칙 안정적이고 지속되는 왕조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 조선의 왕위 계승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번째는 왕비가 낳은 첫째 아들이 다음 왕이 되는는 것이다. 적장자(본부인 곧 왕비가 낳은 큰아들) 계승의 원칙은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상속 원칙이었다. •두번째는 덕이 있는 사람이 왕이 된다는 원칙으로, 태종의 셋째 아들인 세종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원칙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적장자 우선의 원칙에 따라 왕위에 오른 사람은 총 27명의 왕 중에서 겨우 7명에 불과했다. 반면, 적장자가 아니면서 왕이 된 사람은 태조를 제외하고 19명이나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덕이 있다는 명분이 있거나 왕비가 아들이 없어, 후궁의 아들이 왕위에 오른 경우로 나누어졌다. 후궁들은 그들의 아들이 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 왕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왕이 후사를 위하여 특별히 처음부터 좋은 가문에서 정식으로 간택하여 맞아들이는 경우와 평범한 집안 출신 궁녀가 승은을 입어 후궁이 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왕의 총애를 입거나 왕자를 낳으면 궁녀에서 빈으로 승격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의 왕위계승 원칙과 후궁제도는 조선왕조가 단일 성씨의 왕조로 500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조선의 왕들은 후궁제도를 통해 일종의 일부다처제 생활을 하였으며 이는 후계자의 생산에 있어서 매우 안정적인 제도였다. 이처럼 조선 왕조는 ‘덕’이라는 모호한 기준과 일종의 일부다처제라고 할 수 있는 후궁제도를 통해 혈통이 끊길 수 있는 위험을 관리하였기에 단일 성씨 왕조를 유지 할 수 있었다. 4.조선왕조의 기록문화 외국에는 스핑크스, 피라미드 등의 있어 위대한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조선에는 조선 왕조 실록이 있다. 조선시기에 왕 곁에는 현재 사무관 급의 사람이 있어 모든 것을 기록했다. 왕이 죽으면 1달 내에 기록을 재 확인해서 4부를 만들어 전국 각지에 두었다.6천400만 자로 기록된 책이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이 책은 실로 방대한 책이다. 조선은 518년 동안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을 기록했다. 그럼 누구를 보게 하기 위해 기록한 것일까? 바로 먼 미래의 본문내용 요인들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다음 사항들은 조선왕조시대의 사람들이 직면했어야 했던 위험에 대해 성공적인 방법으로 대처했던 예들이다. ‘명’나라에 대한 제후국의 위치와 ‘사대교린’ 명나라 영락제(재위: 1402년~1424년) 시기의 영토 14C초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창건할 당시(1392), 중국지역에는 명나라가 있었고, 그들의 세력은 막강했다. 후의 조선은 창건 당시 명나라의 제후국으로서 선언을 하는 동시에,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새 왕조의 승인을 요청하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받아 사용하게 된다. 이런 조선의 외교정책을 ‘사대교린’이라는 말로 나타낼 수 있는데, 이는 ‘큰 나라를 받들어 섬기고 이웃나라와는 화평하게 지낸다’는 뜻을 나타낸다. 여기서 큰 나라는 명나라를, 이웃나라는 일본과 여진족을 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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